회사를 때려치자!
< 회사를 때려치자! >

회사를 때려칠 각오를 다지다

나는 경영/IT 컨설턴트였다. 외국계 컨설팅 펌을 거쳐 국내 대기업 소속 컨설팅 펌에서 근무를 했다. 3년 정도의 짧다면 짧은 시간. 길다면 긴 시간이었고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일 평균 14시간은 근무를 했으니 소위 말하는 직장인보다는 빡세게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옛 회사 선배로부터 같이 사업을 시작해보자는 제안을 듣게 되었고, 나의 주말 시간을 할애하면서 파트타임으로 업무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말 출근이 너무 당연시 되는 직업이었기에 계획대로 진도를 빼는 일이 여간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주말 시간을 이용해 사업을 준비한지 두 달여가 지나니, 뭔가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증폭되면서 휴직을 강행해버리는 용기가 생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창업자 구성은 참으로 이상했다. IT서비스를 하겠다면서, 멤버 구성은 컨설팅 출신의 organizer 4명이 전부였다. 심지어 개발자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작지 않은 의견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개발은 외주로 돌리자는 선배의 의견에 난 절대 동의할 수 없었고,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공동창업자 급으로 CTO를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때 딱 처음으로 생각난 사람이 지금 우리 회사의 공동창업자이자 CTO인 대학 동창이다. 우리 둘 공통의 친구를 통해 어렵게 그 친구와 술자리를 만들어냈고, 난 그 자리에서 마치 투자자 앞에서 발표를 하듯이 그 친구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발표했던 아이템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으나, 열정적으로 피티하는 내 모습에 약간의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우리 팀에 조인하여 함께 일을 시작하려던 중 지분 문제가 불거졌다. 난 당연히 새 멤버가 (그것도 가장 중요한 멤버가) 들어왔으니 지분 조율을 다시 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의견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 친구와 나는 계속 둘이 만나면서 서로 호흡을 맞춰보았다. 또한, 인연이었는지 우리는 서로 도보로 10분거리에 살고 있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카페에 만나 같이 의논하고 밥먹고, 또 다른 카페에서 일 하고 저녁에는 치맥 한잔하며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행력을 최우선 가치로 사업을 시작하다

결국 우리는 지분 문제를 풀지 못하고 기존 팀에서 갈라서기로 결심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판단했던 우리는 아이템에 목숨 걸기보다는 우리가 최고의 실행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우리는 친구들끼리 시작하는 일반적인 스타트업 형태와는 좀 다르게 시작했다. 공동창업자로서 서로 지켜야 할 사항들을 명문화해 계약서를 쓰고 법인을 설립해 법적으로 열심히 해야할 수 밖에 없는 충분한 근거를 만들었다. 서로 간에 10년 이상 연락이 없던 동기인지라, 우리는 친구라기 보다는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렇게 3달만에 우리의 첫 베타서비스 형태의 서비스가 런칭했다. 개발이 진행됨에 동시에 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영업 활동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마이너 문화를 타겟으로 한 서비스인지라 시장이 크지는 않았지만 반응은 명확했고 시드머니 투자와 각종 정부사업 R&D 자금을 받게 되었다. 우리가 의도하는대로 시장이 따라와주는 느낌이었다.

내가 속일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 우리는 취해있었다. 첫 아이템부터 원하는대로 사업이 진행되고 자금적 여유도 생기니 자신감이 붙었다. 모든 것이 다 내 생각대로, 내 분석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다 보니 깊은 고민 없이 의사 결정을 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마이너 문화를 지향하던 서비스에 대중성을 입히기 위해 억지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 고객들을 만나기 보다는 GA에 찍히는 숫자에 집착했고 점점 서비스는 엣지를 잃어갔던 것 같다.

이 때 권도균 대표님의 스타트업 경영수업 책을 읽게 되면서, 내가 무슨 실수를 하고 있었는지 반성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컨설턴트로서 항상 나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직업을 해왔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각종 그럴싸한 이유로 장미빛 청사진을 보여주고 (물론 그 그럴싸한 이유라는 것은 엄청난 분석의 결과이며, 한치 허점도 없는 논리가 필요하다.) 고객들의 박수를 받고 프로젝트를 마쳤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실제 고객들에게 이유 따위는 없었고 내가 논리력을 펼칠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냥 싫으면 싫은 것이지, 싫은 이유에 논리적 근거를 기대할 수가 없는, 어쩌면 가장 냉혹한 존재였다.

어느 날 밤 나는 과거에 내가 열심히 만들 던 시장 분석 자료들과 각종 발표자료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여기엔 '고객'이 없었다. 숫자만이 가득했다.

니즈 검증은 숫자로 나오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운영하던 서비스와 컨셉이 비슷한 '카드뉴스'라는 키워드에서 기회를 보고 팀에 피벗을 제안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온갖 데이터를 분석하고 재무예측을 해서 그럴싸한 발표자료를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과학적이며 근거 없는 나 자신만의 통찰력을 믿었다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이 만들어 내는 송곳과 같은 서비스는 정량적인 분석보다는 정성적인 분석이 훨씬 의미 있다는 판단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카드뉴스 포맷의 컨텐츠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다녔다. 언론사, 기업, 에이전시, 개인들까지 최대한 다양한 집단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니즈를 검증하고자 했고 시장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를 명확히 보기 위해 노력했다.(그들이 하는 말은 반만 믿고, 그 속의 진심을 알아내고자 눈을 보려고 노력했다. 왜냐면 이런 방식의 인터뷰가 잘못된 결론을 도출하기 쉬운 방식이라 생각한다.)

내가 잠재 고객들을 만나면서 알고자 했던 것은 세 가지였다.

  • 우리가 고객들이 원하는 MVP를 구현할 능력이 되는가?
  • 팀원 모두가 시장성을 공감할 수 있는가?
  • 우리 서비스의 자발적인 전도사가 되어 줄 100명의 고객은 누구인가?

약 두 달간의 수 많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 팀은 위 세 가지의 답 모두에 어느정도 긍정적인 답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유명한 분 앞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왜 피벗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개발하고 있는지를 공유할 수 있던 첫 번째 자리였다.

결과는 고객들이 말해 줄 것이다

자신감에 찬 발표 후 나는 '왜 컨설턴트 출신이 논리가 없고 스티브 잡스처럼 인사이트로 사업을 풀어가려 하냐'는 피드백을 듣게 되었다. 어째서 시장규모나 타겟 고객도 명확히 하지 못했냐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좋은 평을 들을 것이라 기대했던 터라 당혹감이 크게 밀려왔다.

난 고객은 속일 수 없는 대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MVP를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1조짜리 10조짜리 시장 규모가 아니라 이 서비스를 사랑해 줄 100명의 고객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난 이 100명이 존재하겠는지를 정성적 분석을 통해 알아보려 했고 이제 그 결과를 알아보려 하는 중이다.

물론 컨설턴트 출신으로 창업을 한 나의 장점은 논리력과 분석력일 것 이다. 하지만 난 컨설팅은 창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컨설턴트가 소규모 스타트업에 빛을 발할 수 있는 위치는 CEO가 아니라 COO일 것이다.(즉 서비스가 안정화되고 난 뒤 운영 효율성 측면에 큰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난 내가 하고 있는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변해왔으며, 이렇게 판단을 한 것이 지금의 나이다.

내 판단의 결과는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곧 드러나게 될 것 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이 포스팅을 다시 읽는 미래의 나는 무슨 표정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