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창업 초기에는 사업계획서를 보여줘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할 때도, 엑셀레이팅 프로그램을 지원할 때도, IR 피칭을 할 때에도... 심지어 공동창업자를 구하기 위해 하고자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 설명을 할 때에도...

창업 초반 사업계획서가 필요한 순간들은 다 나열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사업계획서는 내 비즈니스를 점검하고 더욱 정교하게 한다
<사업계획서는 내 비즈니스를 점검하고 더욱 정교하게 한다>

아직 보여줄만한 베타 서비스나 시제품이 없는 단계에서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업계획서 뿐이기에 그 중요도가 가장 높은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다보니 사업계획서는 누가봐도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는데요.

여기 세콰이어 캐피탈에서 권고하는 사업계획서 목차를 한번 보고 갈까요? (원문: https://www.sequoiacap.com/article/writing-a-business-plan/)

회사의 설립 목적 (Company purpose)

  • 한 문장으로 명료하게 어떤 회사인지(혹은 서비스) 정의합니다.

문제점 (Problem)

  • 고객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이점에 대해 현재 고객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해결 방안 (Solution)

  • 우리 회사가(혹은 서비스) 어떻게 고객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 실제 우리 제품이 어디에 포지셔닝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 Use Case를 보여줍니다.

왜 지금인가? (Why now)

  • 우리 제품이 속한 산업 분야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설명합니다.
  • 우리 제품이 성공할 것으로 보이는 최근의 트렌드에 대해 설명합니다.

시장 규모 (Market size)

  • 우리의 고객이 누구인지 설명합니다.
  • TAM(Total Available Market), SAM(Serviceable Available Market), SOM(Serviceable Obtainable Market) 으로 시장 규모를 제시합니다.

경쟁사 현황 (Competition)

  • 경쟁사를 리스트업합니다.
  • 우리의 경쟁우위가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제품 소개 (Product)

  • 제품에 대한 상세 소개를 합니다. (스펙, 기능, 아키텍처, 지적재산권 현황 등)
  • 개발 로드맵을 제시합니다.

비즈니스 모델 (Business model)

  • 수익 모델
  • 가격 정책
  • 고객생애가치(Customer Lifetime Value)
  • 판매/유통 모델
  • 고객/거래처 리스트

팀 소개 (Team)

  • 창업자 소개 및 팀원 소개
  • 이사진 소개

재무현황 (Financials)

  • P&L (Profit & Loss)
  • 재무재표
  • 현금흐름표
  • 지분현황

물론 위의 예시는 초기창업자들을 위한 것 보다는 VC의 문을 두드리는 최소 시리즈A 기업들 대상의 예시가 되겠습니다. 서비스도 없는데 재무재표가 왠말이냐! 하실 수 있지만, 아주 좋은 흐름이라고 생각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여기서 제 고민은 시작되었었습니다. 몇 번의 피벗을 경험하면서 몇 년의 업력이 쌓여갔지만, 여전히 초기 사업계획서 형태의 IR 피칭을 할 일이 많았는데요. 매출과 같은 재무적 지표를 강조할 수 없는 스테이지인 만큼, 서비스의 비전을 강조해서 투자자(혹은 심사위원)들이 우리 서비스가 세상에 나온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청중들이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요즘 IR행사들은 점점 경쟁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30분의 발표 시간이 주어지는 IR행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15분... 10분... 5분으로 점점 짧아지다가 이젠 100초 PT도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점차 쇼미더머니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물론 정상적인 투자 논의 상황에서의 IR은 이렇지 않습니다.)

<목걸이를 받느냐 못받느냐가 100초 안에 결정됩니다>

 읽는 보고서와 들려주기 위한 PT는 다릅니다.

요즘도 가끔 IR 행사를 가보면 보고서와 같은 PPT를 그대로 화면에 띄우시고 발표를 진행하시는 분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발표 준비도 제대로 안되어 있으셔서, 몸이 화면쪽으로 돌아가신 상태에서 내용을 읽고 계신 경우도 있죠.)

<바로 이런 발표 자료말입니다>

극단적인 예시기긴 합니다만 이런 보고서 형태의 IR덱에는 우리 제품에 대한 수 만가지의 장점부터 팀원들에 대한 자랑까지 너무 많은 정보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에 제대로 정보 전달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흔히들 "장표"라고 부르는 위와 같은 자료는 발표용이 아닌 읽는 목적으로 이용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투자자가 회사의 공식적인 IR자료를 요청 할 때 메일을 통해 전달드리면 딱 좋은 형태이지요.

IR에서 중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발표를 해야 하는 IR에서는 짧은 시간에 청중들의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중의 공감 혹은 공명을 위해서는 이를 목적으로하는 컴팩트한 목차 구성이 필연적일 것입니다.

발표자리에서 우리가 첫 문장을 뱉는 순간 청중의 몰입도는 결정됩니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에 담긴 자신감, 표정 등으로도 청중의 몰입도를 높힐 수 있지만, 이 포스팅에서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프리젠테이션 스킬이 아닌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IR덱의 목차 구성 및 흐름인 만큼 이런 내용은 넘어가도록 할께요.

네, 다시 말씀드리지만 IR에서 중요한 것은 청중의 공감을 얻는 것입니다. 화자와 청자 간의 공감이 있어야만, 그 뒤에 추가적으로 제공하는 정보. 제품에 대한 장점, 차별성 등도 더 무게감있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공감을 중심으로 구성해본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IR덱의 목차입니다.

문제점

  • 청중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제시하는 불편한 상황을 청중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상황을 언급한다.

솔루션

  • 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우리만의 방법을 제시한다.

특장점

  • 우리 제품만의 특장점 및 경쟁 제품과의 차별성을 나열한다.

기회 요인 (시장 현황)

  • 우리 제품이 왜 지금 등장했는지 시장 관점에서 근거를 제시한다.

운영 성과

  • 우리 제품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CSF(핵심성공요소)를 시계열 데이터 형태로 제시한다.

향후 계획

  • 단기적인 목표, 그리고 이 제품을 통한 장기적인 목표를 CSF 중심으로 언급한다.

회사 소개

  • 회사와 제품 개발 간의 부합성 관점에서 팀원 역량을 강조한다.

위의 흐름은 각 꼭지별로 어느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느냐에 따라 100초 PT부터 30분 PT까지 모두 소화가 가능한 구성입니다. 단지 각 꼭지별 어느정도 상세하게 내용을 전개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저의 경우는 발표 시간이 짧다면 특장점 및 회사 소개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습니다. 우리 제품의 운영 성과가 우리 서비스만의 특장점이나 팀원에 대한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데이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든 발표에서 문제점 및 솔루션에 약 30%~50%의 시간을 할애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청중이 우리가 제시하는 문제 인식 및 해결 방안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한다면 그 뒤 우리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그냥 허공 속의 외침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려 깊은 청중들은 저 사람이 왜 저런 제품을 기획했는지, 왜 저런 사업을 하고 있는지 발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십니다. 하지만 멍한 상태로(혹은 지루한 감정으로) 나의 발표를 듣는 사람이 다시 집중할 수 있도록 하려면 문제 의식에 무게를 두는 발표 방식도 좋은 방법입니다.

정리하며...

발표 구성 및 흐름에 공식이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글의 서두에 제시한 세콰이어 캐피탈의 사업계획서가 있긴 하지만...) 하지만 비즈니스로 바쁜 와중에 또 계속 새로운 발표 자료를 만드셔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저의 경험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겨울이 오고 있지만, 누군가는 살아남아 봄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사업인 것 같습니다.